How many (programming) languages does a coder really know?

Quora에 올라온 흥미로운 글을 페북생활코딩그룹의 한 분께서 번역을 해주셔서 함 퍼왔습니다.

번역 출처:
https://www.facebook.com/groups/codingeverybody/permalink/978825162158020/

원문 출처:

Quora의 How many (programming) languages does a coder really know?
http://www.quora.com/How-many-programming-languages-does-a-coder-really-know

Q : 코더가 정말로 알아야 되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숫자는?
난 17살이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싶다. 프로그래머로 살아가는데 얼마나 많은 언어들을 알고있어야 되는지 알고 싶다.

추가 정보 : 지금 난 자바, 파이썬과 C++(잘하진 못함)을 할 줄 안다. 여기서 뭘 더 배우면 대학교 다닐때 도움이 될까? (물론 졸업하고 나서도)
자료구조도 조금 알고있다. LL, BST, Queue, De-Queue랑 Stack.
거기다가 HTML 기반의 프리랜싱도 조금할 줄 알아.

P.S. 내 선생은 하스켈 공부해보라고 권하던데 어디서 배우면 좋음?

A : 제가 전문가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딛은 해에 상사에게서 배운 교훈을 공유해드립니다. 제 상사는 회사에 20년 넘게 근속했고 얼추 15년 동안 관리 업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회사 에서 어떤 프레임워크(제품)을 평가하게 됬는데 제게는 그 제품의 알고리즘을 우리 회사의 알고리즘과 비교하는 일이 떨어졌습니다. 그 일에 제겐 썩 내키지가 않았는데 왜냐면 학교를 졸업한 뒤로 사용한 언어가 C++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며칠을 허비한 후에 전 상사에게로 가서 모르는 언어는 제 역량 밖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늘 그렇듯이 미소를 지으며 다음을 말해주었습니다.

” 네놈의 역할이 엔지니어란 걸 명심해라. 그리고 네가 엔지니어인 이상 일을 할 때 필요한 어떤 언어든지 할 줄 알아야 한다. 문법과 세부 사항을 습득하는 데 시간이 걸리긴 하겠다만 ‘로직’은 변하지 않는다. 넌 잘 할 수 있으니깐 다시 한 번 잘해보아라.”

당 신이 이 말 뜻을 제가 받아들인 그대로 해석할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를 계기로 제가 일을 바라보는 관점과 방법이 변했습니다. 제 상사는 엄청난 양의 제품들과 다수의 팀들을 관리하지만 여전히 그는 코딩합니다. 그는 백엔드, 프론트엔드, computation 이슈들을 고칩니다. 저는 그 이후로는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전 자바와 R을 다뤘고 지금은 파이썬을 쓰고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 팀에 필요하고 또 우리의 제품에 제일 좋은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어떤 언어든지 상관치 않고 코드를 쓰는 엔지니어 입니다. 제 조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관심 있는 언어를 배우고 당신이 하는 일을 보다 더 분석적으로 해보세요.
by Raviteja Chirala

출처 : http://okky.kr/article/277350

If you are developer….

 이 글은 글쓴이의 임의내로 실제 상황의 내용을 각색하여 적는 글 입니다.

 회사에 입사한지 이제 4개월차. 아직까지는 일하는 것 보다는 회사의 분위기 정도만 눈에 약간 들어오는 것 같다.

 수습기간은 끝이났고, 이제는 하는 일에 대해 어느정도 책임감을 느껴야 할 때… 어느 프로그램의 패치를 진행하는 일이 주어졌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작성한 프로그램을 고객의 요청으로 약간 수정해야 하는 작업인데, 패치 날짜가 바로 다음날까지 다가왔다.

 시스템 프로그램의 특성상, 개발보다 구성이 더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부끄럽게도 패치 전날까지 나는 수정한 프로그램의 어떠한 테스트도 진행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테스트 환경을 설정한다는 이유로 무려 보름(!)의 시간을 설치와 재설치로 보내버리고 더욱이 마지막까지 테스트 환경의 구축은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팀장님께 도움을 요청해서 겨우겨우 테스트 환경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미 시간은 밤 10시를 넘어가고… 괜히 신입한명 때문에 팀장님은 일찍 퇴근도 못하시고 남아계셨다.

 마치 “Pair-Programming”을 하듯 팀장님의 설정 모습을 지켜보고, 내가 했던 설정과 구성들에 대한 Feedback을 받으며 한창 작업에 열을 올리다가 문득 설정의 난관에 부딫혔다.

 그때 팀장님께서는 로그파일을 하나씩 하나씩 열어보시더니 이내 곧 오류사항을 수정하기 시작하셨다.

 그 팀장님의 덤덤한 모습에 나는 문득 어떻게 그런 오류들을 수정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일을 어떻게 진행하면 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 것이었는데, 팀장님은 그것보다 더 높은 곳을 보고 계셨다.

 Worker 가 아닌 Developer 로서의 길을 말씀해주신것이다.

 ” 만약 네가 개발자라면, 어떠한 상황을 만나든, 어떠한 문제를 만나든, 그 많은 정보들 속에서 사실 하나를 끄집어 내야해. 그리고 그 사실을 바탕으로 또다른 진실을 끌어내야하지. 그리고 다시금 뽑아낸 정보를 토대로 또 다른 진실을 끌어내고 이런 일을 계속 반복하는 거야.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이건 개발에서만의 일이 아니야. 이 세상 모든 상황에 적용시킬 수가 있지.

 ” 만약 네가 개발자라면 말이지.”

만 팔천원만 벌어와요 ^^

 전 이제 갓 사십대 넘은 주부입니다..

스물두살에 결혼해 2남2녀의 엄마로 살아온지 어언 20년이네요..

여러분들에게 동정을 얻거나 작위적으로 쓴 글이 아닙니다..

그냥 새벽시간에 손님은 없는데 그냥 돌아다니고 있다는 신랑과 통화중에

있었던 에피소드구요.. 저 혼자만의 독백으로라도 신랑에게 제 마음을 한줄 전하고 싶은

마음에 올려본 글인데..본의 아니게 님들의 관심을 받는 글이 되어있네요..

저도 같이 맞벌이도 하고..그러면서 저희도 살아갑니다.

제가 쓴 글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생활이 그렇게 살아가지는 거라는 의미일뿐..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것은 그다지 거창하지않다는것을.. 얘기하고 싶었을뿐이랍니다.

여러분들은 살면서 얼마나 많은것을 잃어보셨는지요..

전 참..많은것을 잃어가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한때는 돈에 목숨도 걸어보고 경제적으로 힘들때 막내를 보육원에까지 맡기며 이혼도

생각해본적이 있었더랬습니다..

푼푼히 저축해서 분양받은 아파트를 순식간에 잃었던적도 있구요.

가족과 떨어져서 생이별을 하면서 살았던적도 있었더랬습니다..

신랑의 실직과 사고..빚독촉도 받아봤습니다..

정말 이 악물고 살았던 세월도 있었습니다..

너무 일찍 세상굴곡을 겪어서일까요.

이제는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를 알게됐다면 넘 오만한걸까요..

세끼 따뜻한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 가족들이 있어서 좋습니다…

돈없어 힘들다고 하면 서로서로 아껴가면서 불평하지 않는 아이들이 제게 참

고맙습니다.. 사는것은 어찌보면 하루하루가 모여서 평생이 되는것을요..

오늘 하루가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면..그리고 내일도 그런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어느 순간엔 평생을 만족하고 사는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늘 하고 살아갑니다.

그래도 늘 감사한것은 가족 모두 건강하다는것.. 어려울때 서로 다독여주는 지혜를

알아간다는것.. 그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는거..별거 아니라고..전 늘 그렇게 생각합니다..

별거 아닌 제 하루를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신 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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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하루하루 열너덧시간 택시몰고 새벽에 들어오면서

몇만원씩 벌어오는 돈이 내게는 천금보다 소중하고 귀하답니다.

아침에 애들 학교보내면서 필요한 용돈 주는것 말고는

푼푼히 통장에 전부다 넣어버리지요..

어느땐 통장에 넣을 새도 없이 다 나가버리기도 하지만

만원이든 이만원이든  꼬박꼬박 넣어서 모아지면 필요한 공과금 내고

애들 학비에 보험에 전화요금에…. 어느새 통장은 늘 바닥이 나있지요..

우린 늘 필요한 그만큼만 누리고 살아요.

요즘은 손님도 더 없고 경기도 안좋은데 당신은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겠다고

손님없는 새벽시간에도 이리저리 쉴새없이 차를 몰지요..

어느새 내년이면 대학생인 큰딸.. 고등학생인 큰아들..그리고 중학생 세째..초등생 막내..

우린 그렇게 여섯식구가 그리 풍족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함도 그리 느끼지않으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지요.

좀전에 당신한테 난 그랬지요

세째녀석이 소풍비 가져가야 한다고 만팔천원..

손님없으면 만팔천원만 벌고 와요~

내일은 만 팔천원만 필요해요..라고 ㅋㅋ

기가막힌지 껄껄 웃던 당신 목소리..

당신이 힘들지 않았음좋겠습니다..

아니 우리 가족모두가 힘들다고 느끼지않고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만족하며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들 너무 멀리들 보느라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 학비걱정에 먼저 한숨이고

다가오지 않은 노후자금 걱정에 잠시도 마음놓고 살지 못하는 이 현실에서

우린 그냥 바보스러울 만큼 묵묵히 하루만을 충실히 살아가는 모습을

사랑하기로해요..

욕심부리다가 제 욕심에 제가 빠져 허우적거리지 말고..

가장 소중한 것은 정말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인것을 잊지않으며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감사하고..그렇게 살아가기로해요..

난 참으로 많이 감사합니다..

여러번의 고비끝에서도 다시금 최선을 다해주는 당신에게..

풍족하게 챙겨주지 못하지만 늘 씩씩하고 명랑하고 착한 울 애들에게..

참으로 많은것을 내가 누리고 산다고 생각하며 감사합니다..

오늘 당신 만팔천원만 벌고 와요..

남들에겐 작아보이는 그 만팔천원이겠지만

그  돈이면 우리 하루는 또 아무런 근심없이 행복하게 지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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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아고라 광장 비연님 글

원본 :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77334&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sortKey=depth&limitDate=0&agree=F

젊은이는 꿈을 먹고 살고, 늙은 이는 추억을 먹고 산다

이 글을 보니 제가 고등학교때가 생각이 나네요.

제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저도 한말씀 올리겠습니다.

저는 71년 돼지띠 90학번입니다. 어디에서 보니 인구가 가장 많은 순으로

71, 72, 70 이렇게 되더군요.. 덕분에 군대에도 6개월씩 기다려서 가고 그랬고,

아마 대학 경쟁률도 당시 사상 최대였을듯 합니다.

님은 아마도 19세 정도 되셨고, 저는 한국나이로 38세이고, 만으로 36세이니

거의 20년정도 차이가 나네요.

저는 그렇게 공부를 썩 잘하지는 못한 편이었습니다.

성격도 내성적이고 사회성이 무척 떨어지는 반면, 집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중,고등학교 시절은 제 인생의 암흑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저희 누나는 경북대학교 치과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머니도 의대나 치대에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성적을 봐도 거기에 갈 형편은 안되고, 제 적성 또한

그런 곳에는 맞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컴퓨터가 너무 좋아서 사실 고3년동안 공부보다는 울티마 같은 게임을

독서실에서 설계하곤 했습니다.

여차저차해서 성적에 맞게 경북대학교 유전공학과에 합격했고,
(반에서 전기 합격한 친구는 딱 2명이었고, 그중에 한명이었습니다)

집에서는 재수하라고 하시더군요. (결론은 다시 공부해서 의대가라는 거죠..)

친구들은 다음해에 모두 의대, 치대, 한의대..등등에 들어가더군요.

저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어머니 뜻에 반해 집에서 미친사람 처럼 하루 반항하다가

결국 그냥 학교에 다녔습니다.

대학은 그냥 간판만 딴다고 생각하고, 대학 내내 컴퓨터와 살았고,

너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군대에 다닐때는 아케이드용 게임을 만드다고

군대에 설계도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고, 휴가 때는 서울 회사에 들락거리면서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군대 끝나고는 2년동안 서울을 모 회사에서 게임도 만들었습니다.

몸이 아파 복학을 하고, 대학교 4학년이 되니 걱정이 되더군요.

학점은 바닥이고, 취직은 전공으로 불가능하고(성적…),

그래서 그 당시 LG 소프트에 경력직으로 합격을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SI 뭔지 이 산업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말 그대로

풋내기였지만, 그냥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냥 취직을 하는 것보다는 관련 공학을

더 공부하는 것이 가치있는 일일 것 같아,

생애 처음으로 4학년 1학기때 전산학 관련 책을 싸들고 도서관에 다녔습니다.

전산관련 수업 1시간도 듣지 않고, 그해 전산 대학원에 합격하고,

2년동안 DBMS를 전공하였지요.

대학원에 다니면서 제가 느낀게 어떻게 4년 전산을 전공한 사람들이

이렇게 나보다 모를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자랑이 아니고, 뭔가 좋아서 하는 것하고, 그냥 취직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하고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느꼈지요.

교수님께서는 박사를 하라고 강력하게 원하셨지만, 집안 형편상 KT관련 회사에

취직을 하였다가 1년만에 그만두고 지금 MMDB를 만들고 있는 회사에서 창업멤버로

8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의 황금기라고 한다면, 대학 4학년 동안 컴퓨터에 미치게 산것과,

군대 마치고 2년간 서울에서 미치도록 게임개발한 것과

알티베이스에서 지난 7년동안 미친듯이 DBMS를 개발한 것입니다.

물론 재수를 해서 의대에 갔으면, 지금쯤 어딘가에서 돈 걱정없이 살 수 있었을 것이고,

개업해서 망했을 수고 있겠지요.

알티베이스는 이제 겨우 100명에 백 몇십억을 하는 회사지만,

그 어디보다도 가치있는 기술력 있는 회사라고 믿고, 자랑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제 인생을 투자한 곳이고, 좋아서 그렇게 해서 그렇지요.

알티베이스가 아니라 이 회사가 청소를 하는 회사라고 했더라도

저는 이곳에서 미친듯이 바꾸고 일을 했을 것입니다.

제가 가진 한가지 모토가 있다면, “최선을 다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온다” 입니다.

세상에 안정적인 직장이 어디있습니까?

그렇게 안정적인 직장이 있다 한들, 교통사고 나서 죽으면 끝 아닌가요?

물론 저도 때로는 불안하고, 은행 잔고가 걱정도 되고, 나이 40이후가 걱정됩니다.

하지만, 안전 펜스 속에서 인생을 관조하듯이 살면, 죽을 때 즐거울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마치 선진국처럼 치열한 경쟁사회이면서도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대한민국이 참 어이없는 나라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게 나의 직업을 “공무원” 과 같은 철밥통을 선택하는 결정적 이유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님은 이제 스무살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지 않나요?

의대에 가신다면 더 이상의 조언은 불필요할 듯 하고,

IT를 하신다면 제가 하지 못했던 다음과 같은 조언을 드립니다.

가능하다면 한국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셔서 대학생활동안 우수한

친구들과 IT 분야에서 경쟁하시고, 공부 열심히 하십시요.

대학원은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 가셔서 공부를 하시고,

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장점을 터득하십시요.

그리고, 영어는 외국인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대한 까지 습득하십시요.

선진 IT회사에 들어가셔서 그들의 개발 문화, 습성, 아이디어를 배우세요.

자신이 잘 익은 열매라고 생각되시면, 과감하게 IT분야에서 창업을 하시고,

성공하십시요.

그리고, 한국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세계적으로 성공한 소프트웨어 기업을

만들었는지 모범을 보이시고, 이후의 젊은이들이 님을 따라 길을 갈 수 있도록

인생의 선배가 되어 주십시요.

제가 이렇게 되고 싶으나, 저는 너무 많이 왔네요. 하지만, 오늘도 노력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드리고 마칠까 합니다.

“젊은이는 꿈을 먹고 살고, 늙은 이는 추억을 먹고 산다”

꿈을 위해 인생을 투자하시고, 성공한 이후에 그 추억으로 인생을 반추하는 멋진

사람이 되시길.

고도의 추상화, 극도의 구체화, 에디슨을 그리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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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는 꿈을 먹고 살고, 늙은 이는 추억을 먹고 산다”


출처 : http://kldp.org/node/90344#comment-4266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