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다가, 울다가, 감동 받다가.

지난 토요일.
선배들과의 기분좋았던 술자리의 마지막에서 듣게된 말 한마디.

그 말한마디로 인해 온종일 우울했던 어제와 오늘.

그동안 잊은 줄 알았는데, 완전히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얼마전에 읽었던 내 일기장이 이유였을까.

가슴아팠던 5년전 그날이 생각났다.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아픔.

아, 젠장.

봇물이 터지듯 생각이 계속해서 나왔다.
그 때 무슨일이 있었는지..

지난 5년간 한번도 이런적은 없었는데.
이제는 덤덤해 졌고, 무엇보다 정말로 완전히 잊혀진줄 알았는데…

참 가진것 없고, 할줄 아는 것 없는 인생이다 싶은것이..
왜 이렇게 나는 바보 같은 걸까.

남들처럼 적당히 하면서 인생을 즐기는 것도 좋은 법도 한데.
젠장, 나는 그게 싫어.
그런 삶의 방식은 내가 싫어.

술을 마시면 좀 나아질까.
오늘 하루는 그냥 취하고 싶어서 억지로 술약속 만들어 놓고
사람들과 술자리를 만들었다.

그랬던 술자리에서 괜히 터져나온 울음보.
이놈의 주책은 여기서도 주체를 못하겠더라.
그냥 덤덤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자꾸 눈앞에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펼쳐지는 것이 참을수가 없더라.

좋게 출발했던 술자리는 나로 인해 삽시간에 고요해지고 들리는 건 홀짝홀짝 소주잔 넘기는 소리뿐.
이게 무슨 주책이야, 청승이야, 궁상이야.

나만 빼고 다들 40대.
그 분들 앞에서 무슨 일이 힘들다고 그렇게 얼굴 꿍해서 눈물 참으며 소주잔을 기울였는지.
오늘 하루 마냥 취하고 말겠다는 다짐도 잠시뿐, 어른들 앞에서 주사를 부릴수가 있어야지.
그저 대충 적당히 밥만 먹고 나와버리니 시간은 이제 겨우 9시를 조금 넘겼을까.

이 따뜻한 초여름 서울 밤거리에 나혼자 갈 곳이 그렇게도 없더라.

털레 털레 신발 이끌면서, 그 좋아하던 음악도 안들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젠장, 젠장.

나란 놈 왜 이럴까.
한숨만 팍팍.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걸으면서도 눈물이 나오더라.
아, 젠장.

그랬는데..

고시원 입구 우체함에 꽂혀있는 편지함속에 내 이름이 적혀있는 봉투를 보았다.

“월드 비전”

얼마전 아동 후원한지 5년이 되었다고 감사 편지를 보냈다고 걸려온 전화가 생각났다.
아마 그 편지 이리라.

하. 하. 하.
돈 없어서 이모양 이꼴을 하면서 생활하는데 후원한다고 매달 돈을 내고 있는 내 모습이 정말 바보같았다.
그것도 5년 동안….

이건 미련한 거야, 멍청한거야.
아니면 둘 다야.

“니 주제를 알라고”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욕지기 아닌 욕지기.
자기 비하를 넘어서는 자기 멸시.

이래선 안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오늘 하루는 이 기분에 취해서 마냥 울고만 싶더라.

집에오니 이런. 열쇠도 회사에 놓고 왔더라.
오늘하루 제대로 꼬여만 가더라.

겨우 고시원 총무에게 사정하여 문을 열고 들어왔다.

또 하나 웃긴것이 바로 엊그제 고시원비를 조금 늦게 내도 되나고 사정했던 나였는데 오늘은 방문까지 열어달라고 사정을 했다.
멋지다, 멋져.

방안에 들어와서 편지를 뜯고 읽어보니, 감사의 편지는 무슨.
그것과는 다른 내용.
다른 사업장에 대한 후원 요청 편지였다.

그래. 다들 뜯어가는 구나.
가만히 읽어 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냥 마음이 상했다.
기존의 후원조차도 취소해버릴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조용히 그 내용을 읽고 있었다.
어떤 내용일까…하고.

거기서… 말도 안되는 위로를 받았다.

그 책자 속, 빈민층들을 돕는 사진에 내가 있었다.
아 젠장.
웃고 있더라.

괜찮다고 웃고 있더라.

아. 정말 이런식으로 위로받고 싶진 않았는데.
이 글을 쓰는 내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정말.. 이런식으로 위로받고 싶진 않았는데..
항상 인생이라는건 이런식으로 내 뒤통수를 치더라.

 

젊은이는 꿈을 먹고 살고, 늙은 이는 추억을 먹고 산다

이 글을 보니 제가 고등학교때가 생각이 나네요.

제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저도 한말씀 올리겠습니다.

저는 71년 돼지띠 90학번입니다. 어디에서 보니 인구가 가장 많은 순으로

71, 72, 70 이렇게 되더군요.. 덕분에 군대에도 6개월씩 기다려서 가고 그랬고,

아마 대학 경쟁률도 당시 사상 최대였을듯 합니다.

님은 아마도 19세 정도 되셨고, 저는 한국나이로 38세이고, 만으로 36세이니

거의 20년정도 차이가 나네요.

저는 그렇게 공부를 썩 잘하지는 못한 편이었습니다.

성격도 내성적이고 사회성이 무척 떨어지는 반면, 집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중,고등학교 시절은 제 인생의 암흑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저희 누나는 경북대학교 치과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머니도 의대나 치대에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성적을 봐도 거기에 갈 형편은 안되고, 제 적성 또한

그런 곳에는 맞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컴퓨터가 너무 좋아서 사실 고3년동안 공부보다는 울티마 같은 게임을

독서실에서 설계하곤 했습니다.

여차저차해서 성적에 맞게 경북대학교 유전공학과에 합격했고,
(반에서 전기 합격한 친구는 딱 2명이었고, 그중에 한명이었습니다)

집에서는 재수하라고 하시더군요. (결론은 다시 공부해서 의대가라는 거죠..)

친구들은 다음해에 모두 의대, 치대, 한의대..등등에 들어가더군요.

저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어머니 뜻에 반해 집에서 미친사람 처럼 하루 반항하다가

결국 그냥 학교에 다녔습니다.

대학은 그냥 간판만 딴다고 생각하고, 대학 내내 컴퓨터와 살았고,

너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군대에 다닐때는 아케이드용 게임을 만드다고

군대에 설계도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고, 휴가 때는 서울 회사에 들락거리면서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군대 끝나고는 2년동안 서울을 모 회사에서 게임도 만들었습니다.

몸이 아파 복학을 하고, 대학교 4학년이 되니 걱정이 되더군요.

학점은 바닥이고, 취직은 전공으로 불가능하고(성적…),

그래서 그 당시 LG 소프트에 경력직으로 합격을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SI 뭔지 이 산업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말 그대로

풋내기였지만, 그냥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냥 취직을 하는 것보다는 관련 공학을

더 공부하는 것이 가치있는 일일 것 같아,

생애 처음으로 4학년 1학기때 전산학 관련 책을 싸들고 도서관에 다녔습니다.

전산관련 수업 1시간도 듣지 않고, 그해 전산 대학원에 합격하고,

2년동안 DBMS를 전공하였지요.

대학원에 다니면서 제가 느낀게 어떻게 4년 전산을 전공한 사람들이

이렇게 나보다 모를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자랑이 아니고, 뭔가 좋아서 하는 것하고, 그냥 취직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하고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느꼈지요.

교수님께서는 박사를 하라고 강력하게 원하셨지만, 집안 형편상 KT관련 회사에

취직을 하였다가 1년만에 그만두고 지금 MMDB를 만들고 있는 회사에서 창업멤버로

8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의 황금기라고 한다면, 대학 4학년 동안 컴퓨터에 미치게 산것과,

군대 마치고 2년간 서울에서 미치도록 게임개발한 것과

알티베이스에서 지난 7년동안 미친듯이 DBMS를 개발한 것입니다.

물론 재수를 해서 의대에 갔으면, 지금쯤 어딘가에서 돈 걱정없이 살 수 있었을 것이고,

개업해서 망했을 수고 있겠지요.

알티베이스는 이제 겨우 100명에 백 몇십억을 하는 회사지만,

그 어디보다도 가치있는 기술력 있는 회사라고 믿고, 자랑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제 인생을 투자한 곳이고, 좋아서 그렇게 해서 그렇지요.

알티베이스가 아니라 이 회사가 청소를 하는 회사라고 했더라도

저는 이곳에서 미친듯이 바꾸고 일을 했을 것입니다.

제가 가진 한가지 모토가 있다면, “최선을 다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온다” 입니다.

세상에 안정적인 직장이 어디있습니까?

그렇게 안정적인 직장이 있다 한들, 교통사고 나서 죽으면 끝 아닌가요?

물론 저도 때로는 불안하고, 은행 잔고가 걱정도 되고, 나이 40이후가 걱정됩니다.

하지만, 안전 펜스 속에서 인생을 관조하듯이 살면, 죽을 때 즐거울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마치 선진국처럼 치열한 경쟁사회이면서도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대한민국이 참 어이없는 나라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게 나의 직업을 “공무원” 과 같은 철밥통을 선택하는 결정적 이유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님은 이제 스무살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지 않나요?

의대에 가신다면 더 이상의 조언은 불필요할 듯 하고,

IT를 하신다면 제가 하지 못했던 다음과 같은 조언을 드립니다.

가능하다면 한국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셔서 대학생활동안 우수한

친구들과 IT 분야에서 경쟁하시고, 공부 열심히 하십시요.

대학원은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 가셔서 공부를 하시고,

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장점을 터득하십시요.

그리고, 영어는 외국인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대한 까지 습득하십시요.

선진 IT회사에 들어가셔서 그들의 개발 문화, 습성, 아이디어를 배우세요.

자신이 잘 익은 열매라고 생각되시면, 과감하게 IT분야에서 창업을 하시고,

성공하십시요.

그리고, 한국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세계적으로 성공한 소프트웨어 기업을

만들었는지 모범을 보이시고, 이후의 젊은이들이 님을 따라 길을 갈 수 있도록

인생의 선배가 되어 주십시요.

제가 이렇게 되고 싶으나, 저는 너무 많이 왔네요. 하지만, 오늘도 노력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드리고 마칠까 합니다.

“젊은이는 꿈을 먹고 살고, 늙은 이는 추억을 먹고 산다”

꿈을 위해 인생을 투자하시고, 성공한 이후에 그 추억으로 인생을 반추하는 멋진

사람이 되시길.

고도의 추상화, 극도의 구체화, 에디슨을 그리워하다.

==========================================================

“젊은이는 꿈을 먹고 살고, 늙은 이는 추억을 먹고 산다”


출처 : http://kldp.org/node/90344#comment-4266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