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자전거 여행기 1/8 (목) (여행 삼일째)

새벽 5시. 졸리기 보다는 긴장감이 앞선다. 낯선땅에서의 첫 라이딩.
지도 하나만을 의지하며 나선다.

서둘러 빨리 마닐라를 벗어나려는 마음과는 반대로 시작부터 삐걱댄다. 익숙하지 않는 주소 표기 방법들.
어제 하루동안 연습을 했다고는 하지만 마닐라를 벗어나기에는 많이 모자랐다.

길묻기.JPG
처음이 힘들지…한번 말트기 시작하면 점점 길묻기에 재미를 느낀다.

스트리트와 애비뉴로 구성되는 마닐라 시내에서 한국인이 길 찾기란 까다로운 일이다.
열심히 달리고는 있지만 계속 제자리만 뱅뱅 도는 느낌이다. ….실제로도 돌고 있었고.

나의 트레이드 빨간 목장갑.JPG
빨간 목장갑은 나의 심볼! 값싸고, 질 좋고, 안 미끌어지고!

똑같은 장소만 3번째쯤 돌았을까… 설상가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쯤이야. 이미 각오하고 있었던 것.
상관없이 그냥 달린다. 그런데 가방에 방수커버를 씌우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가방이 쫄닥 젖었다.

아따 비많이 온다.JPG
비온다…또 비온다…

오전 10시까지 마닐라만 계속 뱅뱅 돌고 있던 것 같다. 건물앞에 서있는 가드(Guard)들에게 길을 물어보고 달린다. 하지만 역시 뱅뱅이 결국 12시가 넘어서야 가까스로 마닐라 시내를 벗어난다.

더이상 시가지가 보이지 않고 쫙 뻗은 도로가 우리를 상쾌….하게 하지는 못했다.

필리핀의 대중교통수단… 지프니와 트라이시클. 참 많다. 엄청많다. 그런데 그 차들이 그렇게 좋은 매연을 뿜는게 아니다. 무엇인가… 검은 악의 기운이 배기구에서 흘러나오는데… 지프니 뒤쪽에 자전거가 서있을때 느껴지는 배기구의 따뜻한 매연… 내 다리가 검게 물들어 가는 것이 느껴진다.

게다가 비까지 계속 오고 있으니, 땅은 물로 덮혀있고, 속도를 낼때마다 어김없이 튀어올라오는 작은 부스러기들… 이해한다. 그런데 이 부스러기가 흙이 아니다. 흙이 아닌… 검정색의 찐득한 느낌의 ‘무엇인가’다. 얼굴에 튀고, 눈에 튀고, 입에 튀고… 뭐 이해한다. 아니, 이해해야지. 오늘만 이러는게 아닐것 같으니…빨리 익숙해지는것이 좋은 것이다.

이 날 기억에 남은 선배의 한마디…
“마스크 사자니까..”

12시쯤 Chow King(필리핀의 중국요리 패스트푸드점)에서 가볍게 점심 식사를 하고 다시 달리려는데….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 마닐라를 빠져 나온것은 맞는데 반대로 달린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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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w King 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고생한다 자전거.JPG
니들도 고생한다. 제일오른쪽에 있는 빅뱅7 자전거가 후배녀석꺼. 짐받이 안장…으이구!

이때부터 지도와 나침반을 함께 사용했다. 무조건 동남쪽으로 가자면서…(우린 서남쪽으로 달렸다…)

지금은 유턴중.JPG
나때문에 꽤 많은 길을 다시 돌아가야 했다. ㅋㅋㅋㅋ

필리핀에서 지프니는 우리나라의 버스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값이 싸고, 많은 수가 운행을 한다. 그런데 그 수많은 지프니 중에서
모습이 같은 지프니를 찾기란 힘든 일이다. 운전자의 취향대로 가지각색의 지프니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거의 차들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 기스같은 것들이 많이 나있다. 그래서 그런걸까… 우리들이 뒤에서 자주 꽝꽝 박아도 운전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그냥
가더라. 만약 벤츠나 페라리에 박았더라면 ㅎㄷㄷㄷ…

지금와서 생각하는데 자전거를 타기에는 우리나라보다 필리핀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도로에서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자동차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당당하게 신호를 대기하고(…가끔씩 신호도 무시하고;;) 해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이곳에서는 자전거도 하나의 Vehicle(차량)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때문에 나중에 한번 당하긴 했지만..

아무튼, 이번엔 제대로다. 제대로 방향을 잡고 신나게 달려…보려고 했으나 후배녀석, 안장이 문제다.
값이 싸다고 구입한 싸구려 중국산 짐받이 안장. 첫날부터 시작해서 끝나는 날까지 문제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로 추천하지 않는 부붐 베스트 넘버 1이다.
짐받이 안장은 비싸더라도 좋은 것을 사기 바란다. 반드시.

안장뿐이었다면 좋았을텐데 문제는 후배녀석에게도 있었다.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한다는 것. 내가 선두, 후배가 중간, 선배가 후미를 맡아 달렸는데 후미에서 오는 선배가 가슴이 조마조마 했단다. 후배의 드라이빙 실력에.. 하지만 나는 앞에 있어서 못봤으니, 그냥 쓩쓩 달렸다. 그저 후배녀석 많이 늦네… 이정도로만 느꼈었다.

길가의 식당.JPG
길가의 이름없는 식당.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것은 노래방 기계. 거의 모든 집에는 노래방기계가 다 있다.

평균 시속 16~18 km/h 의 속도로 달린것 같다. 오르막이 있는것도 아니고, 계속되는 평지였는데 부진한 성과다. 오늘하루 바탕가스까지 가려고 했으니 무리. 중간에 있는 칼람바라는 지역에 도달하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이제는 호텔을 알아볼 시간이다.

날이 더 어둡기 전에 호텔을 찾아본다. 이곳에 물어보고 저곳에 물어본다. 마닐라를 벗어나니 필리피노들의 얼굴에 웃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일부러 기회를 만들어 한마디라도 더 말을 붙여본다. 최대한 빨리 필리핀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야 한다. 여행내내 두려움만 안고 다닌다면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다행히 호텔 하나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운이 좋아 전화까지 할 수 있었는데 500~800페소쯤 했던 것 같다. 정확한 가격은 기억이 안난다. 기억이 나는건 값을 깎는 답시고, 어줍짢은 영어로 쇼부를 치다가 실패했다는 기억뿐… 지금 생각하면 그곳 물가로도 비싼가격이 아닌데 왜 그렇게 깎으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ㅋㅋㅋㅋ

전화로는 한번 면박을 당했다. 이제는 어쩌나…직접 찾아가서 원래 가격에 묶기로 한다. 다들 지쳐있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와중에 여행동안에 단 한번 찾아온 엄청난 행운을 만나게 된다. 하룻밤 민박을 하게 된 것. 호텔로 가는 길을
물어본 것이 인연이 되어 그곳 주민의 호의로 하룻밤 묵어갈 수 있었다. 그런 행운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적잖이 긴장했지만 엄청난 호의로 긴장감을 풀 수 있었다. 필리핀의 진짜 생활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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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미는 요리중!

나이를 많이 드신 아주머니셨는데 자기를 편하게 Mommy로 불러달라고 했다. 여행온지 삼일만에 새엄마가 생겼다. 이대로 가면
내일쯤엔  애인이 생길것 같다. 한국에서 25년이 넘도록 못만들었던 애인을 이곳에는 일주일안에 만들 수 있겠다. 참 좋은 곳이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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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미랑 빨래중! 정말 잘해주셨다. 고마워요, 마미!!

평범한 가정집이다. 우리를 재워준다니 뭔가 보답을 하고 싶다. 저녁을 사주겠다고 하니, 집에 가스가 없어서 요리를 못한단다.
가스부터 사러간다. 우리가 사용하는 LPG가스통의 전반 정도의 사이즈에 똥똥한 모습이다. 가격은 475페소(우리돈 14250원)

마미.JPG.
우리 마미! 🙂

이제는 음식 재료를 사러 간다. 라푸라푸(우리나라의 다금바리)를 산다. 3kg에 130페소(우리돈 3900원). 정말 싸다.
마미와 집근처 시장에 같이 가서 음식재료를 사는데 참 재미있다. 퍼덕퍼덕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바로옆 과일가게에서 샀던 필리핀 바나나도 정말 최고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바나나랑 많이 틀리다. 텁텁한 뒷맛이 없는 것이 꼭 새콤달콤 먹는 기분이다.

이윽고 저녁시간. 필리핀의 전통요리 시니강이다. 시큼한 국물맛이 특징이다. 그런데 우리만 식사를 먼저한다. 다같이 모여서 식사를 함께하자고 해도 괜찮다고 한다. 먼저 먹으란다. 겸상하지 않는것이다. 배려일까? 문화일까?

호기심이 일기는 그들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어떻게든 우리말을 이해하려 애쓰고, 우리는 우리의 의사를 표현하려 애쓰니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들과의 대화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정말 기분좋고 재미있는 저녁이다.

이제 필리핀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졌다.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 첫 날부터 이런 행운을 겪다니, 좋은 느낌이 든다. 이 여행, 뭔가 얻어가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닐 것 같다.

필리핀 자전거 여행기 1/7 (수) (여행 이틀째)

아침이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제공해준다. 서양식, 한국식 두가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데 당연히(?) 한국식을 선택한다.

계란국에 밥과 반찬. 괜찮았다. 다만 호텔비가 비쌌을뿐..

어제 저녁에 인왕산 호텔 사장님께서 알려주신 교회로 향했다. 교회까지는 호텔에서 약 200 미터.

정말 가까운 거리였지만 외국이고, 어제 느낀 필리핀의 첫인상이 강하게 남아있어 다들 긴장이다. 나도 겉으로는 멀쩡한 척 했지만 약간 겁이났다. 낯선 곳에서 마주치는 3세계 사람들. 텔레비전이나 사진이 아니다. 그들은 진짜였다.

어제 저녁에 호텔 프론트에 근무하는 한국말을 잘하는 필리핀 아주머니에게 우리 여행 계획에 대해 이야리를 했었다. 깜짝놀라면서 위험하다며 하지말라고 말린다. 필리핀 사람들도 그렇게 여행은 안한다고… 정말로 가고 싶다면 ‘버스’를 타란다. 필리핀의
대표적인 이동수단 트라이시클과 지프니는 타지 말라고 한다. 위험하단다. 필리핀 사람들도 그곳에서 강도를 당한단다.

그때는 웃고 넘겼는데… 막상 거리를 걸으니 점점 더 약한 마음이 든다. 아직 아무런 일도 겪은 것이 없지만 필리핀 사람들 모두가 무섭게만 느껴진다.

거리에서 보는 빈곤한 모습의 필리핀 사람들.. 마닐라에서 만난 거리에서 스친 필리피노(필리핀 사람을 뜻하는 말)들 중에서 웃는
얼굴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딱딱한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이곳은 총기 소지 허가 국가.

그 중 어느 하나가 악한 마음을 먹고 달려드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제대로 눈도 못 마주친다. 길가에서 스쳐가는 필리핀 사람들
모두가 마치 범죄자로 느껴진다. 이제야 내가 어떤 곳에 왔는지 깨닫는다. 사람들이 왜 위험하다고 이야기를 하는지도…

여행 이틀째, 아직까지는 필리핀에 대한 색안경을 벗을 수 없었다.

아, 어제 우리에게 호텔을 소개시켜줬던 한국인의 필리핀 친구가 우리 여행계획에 듣더니 딱 한마디를 하더란다.

“Crazy.(미쳤네)”

교회까지 가는 200미터동안 꽤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여행자체에 대해서..

교회에 도착해서 그곳 목사님과 만나 바탕가스에 있는 한국인 교회에 대해 여쭤본다. 그리고 여행 계획을 말씀드리고 조언을 구한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길..

“바탕가스에 한인 교회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여행에 대해서는 말리고 싶네요. 만약 제가 아는 사람이었다면 못가게 했을겁니다.”

긍정적인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교회에서 나와서 마닐라시내를 돌아보기로 한다. 돌아다닌다고는 하지만 골목으로 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그저 주위를 맴돌 뿐이다.

멋들어진 교회.JPG
마닐라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교회. 고풍스런 서양식 교회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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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 밖에 내놓고 키우는 칠면조는 처음 봤다.
다들 여행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그냥 점심부터 먹고 어제 계획했던 지도부터 사러 가잔다. 일단 호텔에 왔다가 가까운 서점의 위치를 묻는다. 호텔말고는 물어볼 곳이 없다.

우리가 사랑한 INASAL.JPG
우리가 여행 내내 사랑했던 INASAL. 그 이유는 Unlimited rice 때문! 밥이 무제한이다. 필리핀 음식은 양이 적어서
우리의 식사량에 턱없이 모자랐다. 하지만 처음 먹을 때에는 밥을 더주는지 몰랐다… 아…영어여…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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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지도사기. 꽤 비싼가격이다. 4천원 정도? 그래도 가장 큰 값어치를 했다. 여행내내 저것만 보고 다녔으니…

마닐라의 마카티 지역만 계속 돌아다녔다. 걸어서. 걸어다니다 보니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재미난 것들도 많다.

이 나라 사람들은 도로의 효율적인 사용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분명히 2차선 도로이다. 하지만 줄을 서는 차들을 보면 세줄로 서있다. 가끔 중앙선을 넘어서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도 볼 수 있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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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져온 가이드에 소개된 그린벨트. 그다지 흥미를 끌진 못했다. 오히려 그린벨트 안에 있는 이 교회 하나가 더 관심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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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영웅 추장 라푸라푸. 이 아저씨가 마젤란을 죽였단다. 제주도에서 잡히는 다금바리의 이름이 이곳에서는 ‘라푸라푸’라고 한다. 라푸라푸의 이름을 따서 지엇단다.

저녁이다. 하루종일 걸어다녔기에 피곤해서 호텔에 있는데 누가 찾아온다. 어제 호텔을 소개시켜주었던 아저씨다. 조금있다가 같이 저녁먹으러 가잔다. 계획도 없겠다. 바로 준비한다.

우리를 데려간곳은 마닐라 시푸드 마켓. 음식 재료를 골라 원하는 식당에서 조리를 해 먹는 방식이다. 그런데 누군가 한명 더 있다.

이름은 찰스. 한국인이지만 그냥 찰스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필리핀에서 생활한지 오래됐단다. 우리들은 짧게 소개를 마치고 음식을 고르고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가 갔던곳.JPG
우리가 갔던 시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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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음직스런 생선이 참 많다. 우리나라에 비해 값도 훨씬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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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게. 무시무시한 집게발에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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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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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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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지금와서 느끼는 거지만, 이때만큼 잘먹은 적이 없었다. 비싸긴 했지만 언제한번 이렇게 먹어보겠는가..

음식을 먹으면서 찰스형이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이야기를 한다. 그냥 형님(친해져서 아저씨가 아니라 형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말을 듣고 자전거 여행을 하지말라고 한다. 후배와 선배의 표정을 봤다. 얼굴색이 어둡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찰스 형이 술을 한잔 사겠다고 술집에 가잔다. 따라가면 무슨 이야기를 할 지 알것 같지만 호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말을 안해주었을 것이다. 생각하는 바는 조금 달랐지만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다. 우리가 겪은 첫번째 만남과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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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있는 술집. 여행 내내 이런 술집을 찾아봤지만 보라카이를 제외한 어느곳에서도 이런곳을 찾을 수 없었다. (….섹시바는 많이 보이더라)

여행이 끝날때까지 아무것도 해드린게 없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용기형님, 찰스형 정말 고마웠어요.

호텔로 돌아와서… 역시나… 다들 여행에 대해 회의적이다. 여행온지 이틀만에 의견 충돌이다. 그냥 비행기 타고 세부로 가자고 한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다. 특히나 후배 녀석… 으이구..!!

이런말, 저런말, 꼬드겨도 안된다. 우리는 괜찮을 거라고 해도 묵묵부답… 결국 그냥 혼자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솔직히 혼자서라도 갈 생각이었다.

그런식으로 여행하려고 필리핀까지 온게 아니라고 했다. 그랬더니 선배도 옆에서 같이 짐을 싸기 시작한다. 아싸!

후배녀석, 억지로 같이 짐을 싼다. ㅋㅋㅋㅋ

“누가 우리한테 총 쏘면 내가 처음에 몸빵하고, 선배가 두번째 몸빵할테니 너는 알아서 튀어. 우리가 두방까지 막았는데 못 튀고 총맞으면 너 죽는다.”
“형은 어쩌구요?”
“괜찮아, 형은 보험들었거든. ㅋㅋㅋㅋㅋㅋ”

간만에 웃는다. 그런데 웃는게 웃는게 아니다.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최악의 상황은 염두해두어야한다. 여권이랑, 예약 티켓이랑, 달러를 묶어 가방 한구석에 넣어두고 선배에게 가방을 맡긴다. 여차하면 후배데리고 도망가라고 한다. 가방안에 다들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너는?”
“가방이 없으니 더 빨리 도망가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기는 했지만, 이번 여행… 걱정만이 가득이다.

현재시각 새벽 2시. 3시간 휴식뒤에 5시에 출발하기로 한다. 최대한 빨리 마닐라를 벗어나기로 한다.

필리핀 자전거 여행기 1/6 (화) (여행 일일째)

1 / 6 (여행 첫째날)

 학교지원으로 계획한 자전거 여행…

 처음에는 유럽이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환율때문에 포기하고 바로 필리핀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렇게 우리 세명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동아리 후배, 과 선배, 그리고 나…. 우린 까칠하고, 계획없고, 대책없었다.

 까칠한건 후배, 계획없는건 선배, 대책없는건 나였다.

 어느정도였나면 필리핀에서는 전부다 영어만 쓰는 줄 알았다…;;

 그냥 자전거만 들고가면 되는 줄 알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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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마 라레이 모하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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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서 소주, 우산 빼고 다 들고 갔다. 물론 박스는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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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를 한답시고 엉망진창 만들어버린 동아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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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만 해도 전혀 걱정이 없었다. 몰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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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가방 하나에 2만5천원씩…3개면 7만5천원…

자전거는 문제가 없었는데…우리가 문제였다.

준비는 순조로웠다. 왜나하면 준비를 할게 없었으니까…

자전거 무게를 재어보니 제일 무거운 내것이 25kg 이었다. 오버차지를 걱정했는데 공항에서 다행히 그냥 넘어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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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거워..빨리좀 찍어줘요. 한쪽어깨에 무게가 쏠리니 장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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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 출발 직전.. 이때가 새벽 4시경..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에 도착을 하니…저녁시간.

 이때부터 사고 시작이다. 한국에서 호텔 예약없이 그냥 온것. 아니, 처음부터 호텔따윈 알아보지 않았다. 그냥 필리핀 가서 아무 호텔 들어가지 였는데…공항에서 저걸 들고 나가는 것 부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비행기 안에서 만난 한국인 아저씨께서 도움을 주셔서 호텔과 택시를 잡아타고 갈 수 있었다. 슬슬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도착한 곳은 마닐라 마카티 에비뉴에 있는 인왕산 호텔. 한국적인 이름이 돋보이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텔이다.

 샤워시설에, 온수, TV, 인터넷 등등이 제공되는 곳이다. 깔끔한것이 마음에 든다. 그런데 비싸다. 3인실이 하루에 2000 페소. 당시 우리돈 6만원 정도다.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만 다른 호텔 아는 곳이 있어야지. 또, 자전거를 들고 낑낑대며 호텔을 찾아다닐 수도 없고 그곳에서 묶기로 했다.

 사실 필리핀에 오기전에 인터넷으로 필리핀의 치안에 대해 검색을 했었다. 책도 읽어보고 했는데, 긍정적인 치안에 있어서는 부분을
찾을 수가 없었다. 택시를 타고 호텔에 오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가게 입구마다 가드(Guard)라고 하는 사설 경비원들이 샷건을
들고 지키고 서있었다. 그제서야 슬슬 필리핀이 어떤 곳인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우선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목표지 졸리비(필리핀에서 유명한 패스트푸드점) 그런데 다들 영어가 처음…문제다…

 토익점수 500, 260, ??? 인 우리 세명. 내가 주문했다. 가운데가 내 토익점수다.

 “This three please.”

 영어를 모르니, 제일 양이 많아 보이는 메뉴 똑같은 것 세개를 시켰다.
 “다른거 먹고 싶으면 알아서 시켜”
 군말없다.
 
 저녁을 먹으면서 상의한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내일 바로 출발이었다. 하지만 필리핀에 온지 몇시간만에 전부들 기가 죽어서 내일 출발할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
 하루 더 있기로 했다…(그러길 잘했다. 지도도 없이 그냥 갔었으면….)

 내일 호텔 근처 한국인 교회에 가서 지리를 조사하고, 서점에서 지도를 구입하기로 한다. 그리고 마닐라 관광도…


자전거 조립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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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완성된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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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리비에서 먹은 세트메뉴. 치킨은 괜찮았지만 스파게티는 맹맹한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