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등학교중퇴 직장인여성입니다.

제제님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오고 가네요..

제가 제제님 이야기를 읽었으니 제 이야기를 좀 해드릴까 합니다.

착하다 못해 바보같은 아버지 때문에 중2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하셨습니다.

어머니도 능력있으시고 아버지도 능력있으시고 (그당시 월200정도 각각)

그런데 아버지가 아버지가 버신돈 뿐 아니라 어머니가 버신돈 까지

모두 아버지 동생인 친삼촌한테 뜯기셨습니다.

정말 착하다 못해 바보같으신 아버지라, 당신 동생이 어디가서 뭘하던

돈 달라하면 돈 주고 사업하다 몇번이고 실패해도 보증서주시고

저 같아도 제가 어머니 입장이였다면 이혼했을껍니다

돈을 그렇게 버는데 결혼 15년이 넘도록 단칸방 월세신세를 못면하니..

그렇게 이혼하시고 저도 가난한 생활이 지긋지긋해서 가출을 했습니다.

문론 한달정도 있다 잡혀들어왔고 아버지는 삼촌과 같이 사업하신다며

큰집에 절 맡기셨고(동생과) 저도 큰아버지한테 당했습니다.

정말 어린나이에 죽을까 생각도 했고 담배피고 술마시고

저도 뭐 오토바이타는 애들이랑 어울리고 그랬습니다 학교요

중학교 출석일수 모자라서 졸업못할뻔한거 봉사활동으로 겨우겨우 졸업했습니다.

큰아버지한테 당했는데 그집에서 살수 있겠습니까.

주유소에서 숙식해가며 아르바이트하고, 고등학교 진학과 동시에 자퇴했습니다.

그러다 주유소 숙식하던 같은 아르바이트생 오빠한테 또 당했고요

그땐 정말 자포자기하고 주유소도 때려치고 같이 일하던 언니랑

나와서 방을 얻었습니다 그동안 일한 페이랑 언니돈이랑 합쳐서

그리고 언니는 단란주점을 들어갔고 저도 따라갔었습니다.

하루 일하고 때려쳤습니다. 아버지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들이

내 몸을 더듬는게 소름이 끼쳤고 큰아버지때 악몽이 떠올라서 도저히

일을 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진짜 여기저기 다 알아보고 공장에 들어가서 미친듯이 일했습니다

먹고 자고 일하고 따른걸 해본 기억이 없습니다(기숙자 제공이였으니까)

그리고 공장에서 사고가 나서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다리를 다쳐서 반년동안 입원하고 재활치료했고 그동안 번돈은 모두

치료비와 병원비 입원비로 날렸죠..

20살 땡전한푼 없었고 15만원짜리 쪽바하나 얻었습니다.

진짜 막막해서 또 죽을까 생각했지만 공장에서 워낙 힘들게 일해서

그것도 견뎠는데 내가 뭔들 못하겠냐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뒤로 별별 아르바이트를 다했죠, 커피숍,오락실,노래방,매장 등..

그리고 작년에 이 작은 회사에 경리로 취업했습니다.

지금 가족도 없고 혼자 이렇게 사는게 가끔 참 어이가없고 기가막히기도 하지만

취업할때 정말 사정사정하면서 고졸아니지만, 열심히 배워하겠다고

약속하고 취업해서 이제 일년 다돼가네요..

문론, 제제님 상황이랑은 엄청난 차이가 있을것을 생각합니다.

누구든 자기상황에 변명하고 싶다는거 이해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그곳에서도 초이스 안돼고

이미 돈을 못버시는 상황이잖습니까..

차라리 경리라도 들어가십쇼. 벼룩시장보면 요즘도 작은 회사들은

사람이 없어서 난립니다. ..

가족들이요.. 어머니랑 동생.. .. 어머니랑 동생위해살껀가요??

가족도 가족이지만 본인의 인생이 가장중요합니다.

일단 책임감은 뒤로미루고 제제님 몸과 마음부터 정리정돈하시길 바래요.

같은 여자로써 너무 안타깝고 슬픕니다…

– 2006-09-07 : 1104S 님

중국의 역사왜곡의 진의

현 게시판 조회 베스트 글의 원문입니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커뮤니티에서 스크랩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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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국의 고구려 역사왜곡이 국내언론의 관심을 받기 전인 작년에, 나는 리앙 첸 교수의 <동북 아시아 근대 정치사>라는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었다. 학사과목이긴 했지만, 유학중이던 당시 한국과는 전혀 다른 중국의 만주 역사관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사실상 중국의 정치역사학의 중심이자 가장 보수적인 동시에 중앙정부의 학술지원의 방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북경대였기 때문에 호기심이 동해 수강한 것이다.

리앙 친은 정부의 학술 고문을 지내고 있는 저명한 정치학과 교수로,
역사학 석학위도 가지고 있고,
현재 중국학계의 고구려 역사왜곡을 주도하고 있는 교수다.

당시 그 과목의 수강 인원은 약 30명정도였는데 한국인은 나 혼자였다.
아마 학기 중간쯤인가? 일제의 만주국 건설에 대한 부분을 다루면서, 마침 만주사에 대한 한국과 중국 정부의 시각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리 앙 첸 교수는 그때 한국과 중국의 만주 역사관의 차이를 이야기하며, “이것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관한 문제이며, 만주가 아닌 북한에 관한 문제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아마 그는 한국인인 내가 그 과목을 수강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 했다.

사실 과거에 만주에 어떤 나라가 있었든, 현재 만주지역이 중국의 영토임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다. 중국으로서 만주 변방 영토의 역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시키는 데는 그러므로 어떤 실익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는데, 현재 중국학계에서 보여지는 만주 역사관의 대대적 재규정의 움직임은, 향후 발생할 북한 영토의 주권 문제를 고려한 정부의 개입으로 야기된 것이라는 것이다.

리앙 친은 북한은 길어야 10년 이상 존속할 수 없을 것이며, 아마 군부 내의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 거의 확실해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의 김정일 라인을 제외한 군 수뇌부의 인물들이 모두 친중파인데다 쿠데타의 중심에 누가 있건, 반란 주도세력은 남한의 군사적 움직임에 대항해 독립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의 군사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국정부에서는 이 상황에서 혁명세력 정권을 인정하고 군사적인 지원을 하면서, 북한지역을 북방 자치성들과 군사 연방화하고, 장기적으로는 북한 지역을 중국의 지방정권화하는 가능성을 심각히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 중국 정부로서 가장 부담되는 것은 남한과의 영토 분쟁이다.

상황 발생시 북한에 대한 남한 측과의 영토 분쟁은 거의 피할 수 없는 것인데, 북한과 남한의 역사적 동일성이 너무 커서 영토분쟁에 대한 국제 여론을 기대할 수도 없을 뿐 더러, 국제재판에 회부될 경우 거의 확실히 중국이 패소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향후 가능한 북한에 대한 사실적 군사 지배를 국제재판에서의 승리로 이끌 장기적인 전략을 구상중이라고 한다.

국제 재판에서 영토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영토임을 주장하는 국가가 다음 세가지를 입증해야 한다.

1. 영토의 사실적 점유
2. 영토의 역사적 점유
3. 영토 점유의 계속성과 정당성

1 번같은 경우, 쿠데타 후 군사적 지원과 군사연방화를 통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사실적 점유는 충족될 수 있다. 그리고 국제재판 회부 이전까지 30년 정도 이 연방을 물리적으로 유지할 경우 영토의 사실적 점유는 국제 사법상 인정 가능한 요건으로 성립한다. 3번 같은 경우, 정당성에 관해서는 북한 혁명정부를 통해 북한 영토를 인수 받으며 만족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2번 영토의 역사적 점유와 3번 영토점유의 계속성이다. 중국은 북한 지역을 역사적으로 점유한 례가 없고, 그러므로 당연히 영토 점유의 계속성을 주장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이 북한이 자국 영토임을 주장할 수 있는 방법은?

그렇다. 만주지역에 세워진 조선족 국가들을 자국 역사에 편입함으로써, 영토의 역사적 점유를 충족시키고, 그것을 사실상의 점유와 연관시켜 계속적 점유까지 충족시키는 것이다. 리앙 첸은 현재 중앙정부는 그러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학계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만주 역사는 과거 사실의 문제가 아닌 미래의 이익의 문제다.
너희는 그것을 학술적으로 접근할 필요도 없고,
한국과 논리적인 토론에 말려들어가서도 안된다.
이것은 정치의 문제이고 너희는 정치를 배우고 있음을 명심해라”

고 말했다.

첸교수의 마지막 한마디가 잊혀지지 않는다. 너희가 관심을 갖고 열심히 한다면, 30년후 중국 땅은 남한 바로 위까지 더 넓어져 있을 거라고….

당 시는 첸 교수가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현재 중국학계의 움직임을 보면 그때 그가 말한 것이 사실임을 의심할 수가 없다. 왜 국내 언론에선 이런 이야기가 다뤄지지 않는지, 중국의 국가기밀을 정부 학술고문인 교수아래 수강하던 내가 우연히 들은 건지, 요즘 뉴스를 보다보면 정말 심란하다…

– 2006-09-07 : 루슈티 님

체조의 여왕…나디아 코마네치

28년전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때 코마네치(당시13세)가

이단 평행봉 경기서 10점 만점을 받는 기록장면

루마니아 체조의 여신이며 그녀의 10점만점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그녀의 7관왕 10점기록도 역시 깨지지 않았다.

루마니아는 여자체조 세계1위이며

나디아 코마네치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 지고있다.

돈 문제에 있어서는 친구도 믿지마라

돈 문제에 있어서는 친구도 믿지말라는 말에 친구를 못믿으면
누구를 믿느냐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한술 더 떠서 신용있는 상대에게도 완전한 신뢰는 금물
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상과 현실에는 괴리가 있는 경우가 많음을 인정하고 사는 것이
삭막한 감은 있지만 낭패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좋을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세상에는 한껏 신뢰를 쌓은 다음 단 한방에 자기를
신뢰한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사업자간 거래를 하는데 있어서도 끝이 좋지 않은 경우가 종종
뜨이는데 수년간 대금 결제를 틀림없이 하다가 맨마지막에 대량의
물건을 받고 부도를 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수년이 지나고 나면 채무자가 채권자보다 오히려 여유있어
보이는 경우가 있음은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없다.

또한 보증을 선 사람보다 채무 이행을 하지 않아서 보증인에게
큰 피해를 입힌 사람이 더욱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다고해서 자신의 보증을 서줬던 사람에게 피해보상을 시원하게
해주었다는 이야기는 별로 듣지 못했다.

어느 경우에는 공급자에게 미리 선금을 주고 생산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는데 공급자가 수년간의 신뢰를 저버리고 돈만 받고 물건은
공급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음을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참고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상품의 안정적 공급과 독점적 지위(?) 또는 가격 경쟁력에
있어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믿고 행했던 일이 공든탑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결과가 되는 경우가 우리 주위에는 의외로 많다.

사업확장을 한다고 신뢰하는 친구에게 사업장이나 분점을 맡겼다가 낭패를
본 경우도 듣거나 보게되는 경우도 있고 퇴직금을 친지의 꾐에 빠져 한 번에
날리는 경우도 있는데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것들을 듣고 간접적인 피해도 본일이 있어서인지
크게 당한 일은 없지만 내가 끝까지 버텨 보증을 안 선 사람에게
별 것 아니라며 보증을 섰다가 낭패를 본 사람도 있으니 현실은 참
냉엄하다는 생각이 든다.

장사를 하다보면 알게 모르게 푼돈을 여러 번 빌려주게 된다.

재주가 없어서 그런지 인덕이 없어 그런지 알 수는 없으나 그 푼돈들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워낙 어려운 형편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현실이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던 공직자들 중에도 돈 문제에 있어서는 정직하지
못한 경우를 많이 보아왔을 것이다.

돈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형제간 부모 자식 간에도 신뢰를 저버리는 경우가
있으니… 돈의 유혹이라는 건 참으로 대단한 것이라는 느낌이다.

세상에는 좋은 일도 많고 훌륭한 일도 많은데 부정적인 이야기를 써놓다
보니 유감스러운 느낌이지만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 직장 생활을
하다가 처음으로 자영업을 하려는 사람, 누군가에게 보증을 서주려고 하는
사람 이라면 참고해서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삶의 교훈은 꼭 경험을
통해서 얻을 필요는 없다.

무엇이든 너무 신뢰하면 배신감도 그 만큼 커질 수 있다.

누군가를 믿는 일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최소한의 경계심은
갖는 것이 좋아보인다.

– 2006-09-01 : 창의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