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람에게서 청계천 헌책방에 가면 참고서를 싸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이태원 시장에 나가 번 일당을 모은 돈을 들고 청계천으로 갔다.
문 과인지 이과인지도 모르고, 대학을 다니겠다는 것이 아니라 합격해서 ‘대학 중퇴자’가 되는 것이 목표라는 나를 불쌍히 여겼는지, 헌책방 주인은 서가에서 책을 일일이 골라 주더니 “이 책들로 공부하면 대학에 갈 수 있을 거다. 있는 돈만 주고 가져가. 내 마음 변하기 전에 빨리 가, 이 촌놈아”라며 내 등을 떼밀었다.

그러나 시간은 넉넉하지 않았다. 나는 아침저녁에는 시장에서 부모님 일손을 돕는 한편 시간을 쪼개 입시 공부를 했다. 시험이 임박했지만 시장일을 돕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험 전이라고 해서 무슨 배려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런데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나는 꿈을 이룬 것이었다. 나는 드디어 ‘대학 중퇴자’가 되는 것으로 알고 기뻐 하다가 등록을 해야만 중퇴자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대학 중퇴자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었다.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길이 뚫렸다. 내 사정을 알게 된 이태원 시장 사람들이 고맙게도 일자리를 하나 주선해 주었다. 새벽 통행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시장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일이었다. 쓰레기를 리어카에 가득 싣고 한참을 끌고 내려가 삼각지, 해방촌, 보광동 길이 갈라지는 ‘콜트 동상’ 언덕길에서 미군 부대를 오른쪽으로 끼고 한참을 내려가면 공터가 있었는데, 거기에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는 일이었다.
1학기 등록금만 벌자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나는 쓰레기를 치우며 2학년이 되었고, 3학년 때에는 학생회장에 출마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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