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난후 온몸의 수분이 빠져나가는듯 했고 어제는 종일토록 몸져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열다섯살때부터 지금까지의 고생했고 때론 치열했던 삶을 몇시간만에 글로 써내려간다는것이 쉽지 않았을수도 있고 글을 쓰면서 과거의
일들이 하나둘 생각나면서 눈물을 뚝뚝 흘려가면서 썼기에 몸이 아팠는지도 모릅니다.
벼랑끝까지 몰리고 몹시도 힘들때는 오히려 독한 마음 때문인지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는데 언제부터 작은 일에도 눈시울을 적시곤 합니다.
너무나도 많은 분들의 격려와 용기를 주는 댓글들을 읽어가면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립니다. 평생 흘릴 눈물을 이번에 모두 쏟아낸 느낌인데…………..정말 고맙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분들이………이 모든게 꿈만 같습니다. 저에게는 상상도 못할일입니다. 그저 고맙다는 말이외에는 다른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글을 남겨주신분들에게 일일이 댓글을 남겨드리고 싶지만 며칠 몇밤을 새워도 못할것 같아서
이글로 대신합니다. 많은분들에게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께서 해주신 격려의 말씀 반드시 인쇄해서 벽에 걸어놓고 두고두고
읽어볼겁니다. 제게는 너무나도 힘이되고 가치있고 소중한 글입니다.
그리고 소설이다…부터 시작해서 몇몇분들이 의심하는 댓글을 읽을때는 많이 속상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맞다, 아니다의 논쟁도 있고 저에게 좋은 말씀을 남겨주신분들에게까지 욕설을 하는것에는 솔직히 분노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
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분들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드디어 사랑하는 동생들과 내가 힘을 합쳐 일군 우리집으로 다음주 일요일에
이사를 간다는것 자체가 기뻤고 흥분해서 감정적으로 글을 쓰다보니 사실관계를 자세히 쓰지 않아서 분명 의심할수도 있었을겁니다.
또한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정면, 측면에서 보는것이 서로 다르듯이 일반적으로 자신이 경험하고 이해한폭에 근거해서 말을하기
마련이므로 제 입장이 되어서 살아보지 않는한은 이해하기가 어려울수도 있겠구나…..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욕을 하는것은 분명
잘못되었습니다.)
어느분의 리플중에 “인증샷”을 올리면 해결된다는
말이 있는데 처음엔 그게 무슨말인가 싶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컴퓨터에 올리는 방법을 모르거든요. 카메라
빌려서 오랜 씨름 끝에 겨우겨우 올리는방법을 알았습니다. 여기서 결국 중졸티가 나는것 같습니다.^^
사진을 올리긴 했는데 제대로 올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건 집을 사게 해준 통장들인데 세어보니 70 여개 되는것 같습니다. 아마 모두 모았다면 백개도 더 넘었을텐데 이사할 때 초창기 통장들은 잊어버렸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상업은행 통장도 있고 개설일자를 보니 91년도에 만들었더군요. 농협의 VIP통장도 있는데 상업은행통장과 농협의 VIP 통장을 보니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상
업은행 있는 건물에 보통의 예식장이 있었고 잡일등을 맡아서 했었는데 일하시는분들이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고 많은사람들의 결혼식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했고 몸은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따뜻했기 때문이어서 상업은행통장이 반가웠고 몇년전 농협의 VIP통장은 무담보로
2000만원을 즉석에서 대출할수 있는 특혜도 있던 통장인데 통장만으로도 내가 많이 성장했다는게 느껴지기도 하고 슬프기도하고
기쁘기도 하고 기분이 참으로 묘합니다.
제가 IMF 시절에 구입했던 등기권리증입니다. 소유주와 등기할 때의 법무사사무소, 그리고 법원의 직인도 일부 가렸습니다.
네, 맞습니다. 열다섯살짜리가 당시 할수 있는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당
시 단순 노동의 부품조립하는 중소기업 공장에 들어갔는데 한달 월급이 20만원(나이가 어려서)이었던걸로 기억하고 있고 새벽에는
두시간동안 신문배달도 했습니다. 그동안 많은일들을 하면서 고생한것을 글로 쓰려면……너무 어렵습니다.
어
쨌건 신문배달을 마치고 난후엔 반드시 돌리다 남은 신문 한부씩을 가져와서 읽곤 했는데 재산을 모으는 방법에 대한 기사중에 많이
강조했던것이 가장 먼저 “종자돈을 모아야 한다”라는 말이었고 처음 목표는 백만원, 그 돈이 모아지면 오백만원, 다시
천만원…….이런식으로 목표를 정해서 모아 갔는데 십만원씩 모을때는 천만원이 언제 모아지나….했는데 천만원이 모아진
통장을 보니 “그까짓 일억쯤이야~~” 하면서 간댕이가 부어도 너무 부은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동생들에게 부업을 시킨것은 공장 지하창고에서 마음씨 좋은 주인 할머니집 반지하원룸으로
이사 갔을때 그 주인할머니가 부업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형의 눈이나, 코 붙이고 이런걸 하면 한달에 9만원정도 받기도 하였고
마늘도 까고, 봉투도 접고….부업양을 많이 할때는 한달에 20만원도 벌때도 있었습니다.
동생들 폐품줍게 한것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신분들은 아마 “폐품”이라는 단어 때문에
그런것 같은데요. 동생들이 학교 다녀오면서 빈병을 줍기도 하고 새벽에 운동하러 나갈 때 동네한바퀴를 돌면 못같은 철제물, 버려진
책등을 함께 주워오고 당시에는 쓰레기 분리수거니 종량제 같은게 없었을때니까…..그걸 모으는데로 바로바로 팔아서 저금했습니다.
속담중에 “티끌 모아 태산”이란게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그말이 단순한 속담이 아니고 제 심장에 새겨넣을만한 가장 위대한 “재테크의 좌우명”이라고 여깁니다.
앞
에서도 말했지만 주말에는 예식장에서 이것저것 잡다한 허드렛일을 했는데 예식장에서 일할때가 가장 신나고 좋았습니다. 뷔페에서
나오는 음식이나, 식당에서 나오는 반찬등을 제 형편을 아는 일하는 아주머니들께서 싸주시기도 하고 동생들도 식당에서 설거지등을
돕고 난후에는 정말 배부르게 음식을 먹일수 있었으니까요.
맞습니다. 학력은 중졸이고 나이는 어리고, 저를 처음 고용하시려는 분들은 굉장히
난감해하셨지만 한두달 지나고 나면 오히려 그것이 저의 자랑이 되어서 어떻게든 많은분들이 도움을 주시려고 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열심히, 온 힘과 정성을 다해서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또한 처음 몇 년간은 많은 돈도 모으지 못했고 힘들었는데 둘째 동생이 야간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는데 두명이서 월급을 받으니 그때부터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도 경력이 쌓이면서 월급도 올라갔고요.
특히 부업이건, 빈병을 줍건간에 돈이 생기면 그날 그날 바로 은행에 가서 입금을
했습니다. 사진 보시면 유난히 새마을금고 통장이 많다는걸 아실겁니다. 그곳의 직원분이 처음에는 저희들을 이상하게 생각했다가
나중에 사연을 듣고 난후부터 비과세로 적금 넣는방법, 목돈을 정기예탁하는법등을 알려주시며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습니다.
8천만원을 어떻게 모았는지 말도 안된다고 하시지만 충분히 가능합니다. 지금이야 이율이 굉장이 낮아서 적금을 넣어도 큰 돈을 모으지 못하지만 90년 중반만 해도 3년짜리 적금의 이율이 14% 했었습니다.
50
만원을 3년불입하면 이자포함해서 2170만원 가량 받았고 한때 그걸 세 개 동시에 넣었던적도 있었는데 비과세로 해서 3년후에
6500만원정도 되었습니다. 모아진 목돈을 1-2년짜리등으로 정기예탁하면 또다시 이자가 붙고, 천만원단위가 넘어가니까 거짓말처럼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한달에 천만원을 번다고 해도 천십만원을 써버리면 한달 십만원 적자이고 한달에 백만원을 번다고 해도 아끼고 아껴서 구십만원을 쓰면 십만원은 저축할수 있습니다.
저축은 마음먹기에 달려있고 노력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더 큰 돈도 모을수 있습니다.
물론 동생들이 중간에 큰병을 앓았거나 제가 게으름을 피웠거나 욕심을 부려 엉뚱한곳에 돈을 쓰거나 했다면 절대 모을수 없었을겁니다.
그리고 중졸치고 맞춤법이 틀린게 없어서 소설이다..라고 하신분도 계시는데 조금 웃었습니다. 만약 대학 나왔는데도 맞춤법이 틀렸다면 그분들은 대학나온사람에게 “중졸”이라고 말할분들 같아서요.
글을 잘쓴다는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저 살아온 이야기를 썼을뿐이고
맞춤법이 틀린게 없다면 그건 열다섯살때부터 신문배달하면서 거의 매일처럼 신문을 읽어와서 그런것이라 생각합니다. 굳이 신문사까지
밝히라는 분도 계실것 같아서 말씀드리면 한국일보를 봤고 장명수 칼럼등을 정말 좋아했고 동생들에게 좋은기사들은 읽어주곤 했습니다.
다가구 주택 구입은 이렇습니다.
당시 매매가 3억원짜리 주택이었고 반지하를 1층으로 여겼을때 4층 건물의 12가구가
입주해있는 총 전세보증금이 2억2000만원의 주택이었습니다. 제가 그집을 사면서 큰 실수를 했던건 모아 놓은 8천만원을 몽땅
털어 넣고 수중에는 돈이 없이 집을 산것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역전세대란이 일어나서 큰 고통을 받았었습니다.
당시 세금 700만원은 어쩔수 없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새마을금고에서 대출)
충당했고 도시가스를 놓을때는 한번 대출을 받으면 다시 대출을 못받는줄 알고서 세입자들에게 부탁을 한것이었고 신혼부부의 도움과
마을 금고에서 추가대출을 받을수 있다고 해서 대출받은돈을 합쳐서 도시가스를 놓았습니다.
그리고 세입자인 신혼부부가 어떻게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줄수 있느냐고 하신분도 계셨는데……..빌려주신것이 아니랍니다.
그러니까 당시 도시가스 놓으면서 세입자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사를 가야 한다고 하시는데 죄송하게도 지금은 제가 돈을 빼줄 형편이
못됩니다. 그런데 부동산에서 말하기를 우리집은 구조도 좋고 가격도 저렴한데 기름 보일러라서 안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시가스를 놓으려고 하는데 여러분들과 제가 힘을 합칠수밖에 없습니다.
투
룸은 백만원, 원룸은 오십만원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제가 충당하겠습니다. 여러분중에 돈이 부족하면 형편대는데로 주셔도 됩니다.
그리고 그 돈은 결코 없어지는돈이 아닙니다. 201호가 1800만원 전세인데 백만원을 내시면 1900만원으로 전세보증금을
고쳐드립니다. 그러니 세입자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가 아닙니다.“
그런데 세입자들은 거의 모두 거절을 하셨고 때론 모욕을 주기도 했고 다만…주인세대에 거주하는 신혼부부와 친청 어머니란 분이 총 5백만원을 도와주시고 그래서 그 집은 기존 2500만원 전세를 3000만원으로 올리게 되었습니다.
보통 다가구주택엔 주인세대가 따로 있습니다.
주인이 입주해서 관리하면서 살지만 집주인이 그럴 형편이 못되면 임대를 하게 되고, 그렇지만 편의상 주인세대라고 호칭합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너무나도 고마운 그 신혼부부는 301호에 거주하는 세입자였습니다.
사실 지금이야 임대차보호법이니, 전세와 월세에 따른 집주인의 의무니, 세입자의 권리니 하는것등은 정확히 알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경황도 없었고 경험도 없었을뿐아니라 처음 부딪히는일이라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전세를 월세로 바꾸면서 내준 보증금은 어디서 났느냐…..(꼭 청문회 하는것 같습니다.^^)
당시 도시가스 놓으면서 3천만원으로 했던 주인세대의 전세가 현재 9천만원입니다. 투룸과
원룸도 거의 당시보다 2.5배 정도 올랐습니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집주인에게 유리한 전세대란이 두세번정도 났고 짝수년도에
난것 같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투룸의 경우 그때는
2000만원 전세였는데 지금은 2000만원 보증금에 월세 40만원을 놓을수 있습니다. 또한 저는 당시 전세보증금 2억2천만원을
모을때까지 더욱더 돈을 모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집을 구입하고 난후에도 여전히 반지하에 살면서 돈을 모았기 때문에 일부 보증금을
빼주더라도 월세가 가능했습니다.
지금은 총 보증금이 16000만원입니다. 보통 다른집에 그 정도 보증금이면 월세가
400만원 이상씩 나온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월 200만원 가량 받는데 물론 그것도 큰돈이지만 월세가 주변보다 적은 이유는
평균시세보다 훨씬 싸게 놓기 때문입니다.
도시가스 놓을때 신혼부부 친정어머니께서 “집주인 피눈물빼고 들어온”것이라면서 돈을 내주셨지요. 그건 저를 위로하는말임과 동시에 저에게 경고 하는말이기도 한다는걸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세입자들 피눈물빼면서”까지 돈벌면 안된다는….그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집에 사시는 세입자분들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고 싶지만 혹여 저의글로 인해
불편해하거나 상처를 받으실까봐 올리지는 못합니다. 솔직히 지난번 올린글도 조심스럽습니다. 첫 댓글에도 남겼다시피 저의글이 결코
세입자분들에게 상처가 안되었으면 합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저를 괴롭혔던 그 분들때문에 더욱 자신을 채찍질하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다만, 현재 살고 있는 이분들도 어쩔수 없이 월세를 살고 있긴 하지만 어차피 제 목표는
집 예쁘게 지어서 동생들과 행복하게 사는것이 꿈이므로 집값좀 올랐다고 개구리 올챙이시절 생각못하고 집주인으로 위세를 부리거나
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습니다.
저는 12월이면 이상하리만치 너무나 외롭고 슬펐습니다. 집이 없다는것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매년 12월이면 용기잃지 말고 힘내라는 편지를 일일이 써서 세입자분들에게 전달을 하고 작지만 마음에
담은 선물을 드리곤 했습니다. 세상의 이치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사실 비단이 곱네, 말이곱네 해도 말처럼 보드랍고 고운것이
어디있겠습니까? 저는 단지 고마움의 마음을 전달했을뿐인데 그보다 더 많은것을 받곤했습니다.
지
금 살고 있는 그분들은 하나같이 선량하고 좋으신분들이십니다. 어떤 세입자분은 아파트 공사자등에서 미장일을 하시는데 여름을 앞두고
우리집 외부의 바닥을 방수시멘트로 보수해놓으셔서 깜짝 놀랬습니다. 단지 그분은 저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방법이 이것밖에
없으시다면서 해주셨는데 정말이지….. 그때도 거친 그분의 손을 잡고 눈시울을 적셨던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일때문에, 주변의 다른 집주인들로부터는 제가 혼나기도 하고 욕도 먹고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뜻을 굽히고 싶은 마음은 결코 없습니다.
어떤분이 댓글로도 남겨주셨지만 이 세상에는 저보다 더 어렵게 자란분도 계시고 당장 여러분들의 부모님 이야기만 들어도 그게 사실이었을까? 할 정도의 고생을 하시는분들도 있을겁니다.
아울러 현재 어려움에 처해있거나 하는분들에게 저의 글이 힘이 되어주고 티끌만한 용기라도 주어질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습니다.
어느 지하철역 화장실에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세상을 보는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으로 보지 않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기적으로 보는것이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온것도 기적이고, 진정한 우리집으로 이사를 가는것도, 신혼부부를
만난것도,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이토록 많은 찬사와 격려를 듣는것도 모두가 기적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전보다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정말 고맙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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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과 지금 나의 생활이 뒤바뀌었다고 했을때, 나는 이 분처럼 이렇게 열심히 살 수 있었을까..
출처 : 다음 아고라 광장, 빈배